예천 야옹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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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예천 야옹정은 조선 중종 때 학자 권의의 덕을 기리기 위해 아들 권심언이 1566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임진왜란 이전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로, 초창기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막새기와와 단청이 남아 있어 건축 양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된다. 정면 4칸, 측면 4칸의 丁자형 평면 구조를 가지며, 주심포 양식과 유사한 공포, 고식 기법, 영쌍창 등 조선 전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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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야옹정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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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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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정보 | |
이름 | 예천 야옹정 |
유형 | 보물 |
지정 번호 | 230 |
지정일 | 1987년 5월 13일 |
주소 | 경상북도 예천군 맛질길 55 (용문면) |
시대 | 조선시대 |
참고 | 양식 : 정면4칸, 측면4칸, 丁자형, 팔작지붕 |
면적 | 57.76m2 |
문화재청 ID | 12,19170000,37 |
문화재 정보 (과거) | |
이름 | 예천야옹정 |
유형 | 유형문화재 |
지정 번호 | 230 |
지정일 | 1987년 5월 13일 |
해제일 | 2016년 9월 9일 |
문화재청 ID | 21,02300000,37 |
2. 건립 배경 및 역사
조선 중종 때 학자인 야옹 권의(1475∼1558)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와 향약을 제정하고 사회 교화에 힘쓴 덕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 권심언이 1566년(명종 21년)에 지은 정자이다.[2]
야옹정은 앞면 4칸·옆면 3칸,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지어졌다. 왼쪽에는 6칸 대청마루가 있고, 오른쪽에는 온돌방이 있다. 대청 앞면에는 넓은 툇마루를 두어 전체적으로 누각처럼 보인다. 건물은 수리로 일부 변경되었으나, 조선 초기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야옹정은 임진왜란 전인 1566년에 건립되었으며, 초창 때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초창기의 막새기와 및 단청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임진왜란 이전 건축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2]
평면은 전체적으로 정면 4칸, 측면 4칸 규모의 丁자형이다. 좌측 3칸은 대청으로, 우측에는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우측칸의 전면에는 누마루 1칸을, 배면에는 온돌방 1칸을 각각 돌출시켰다. 주위에는 방형의 토석담장을 둘렀으며, 전면 담장 좌측에는 사주문을 세워 정자로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자의 전면과 배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는데, 전면 퇴칸의 하부에는 누하주 6본을 세워 전면의 퇴칸은 누마루를 이루게 하였다. 배면의 퇴칸은 숭정년간(崇禎年間)에 설치되었으나 기존 건물과 어색하지 않게 설치되어 이 건물의 또 다른 특징으로 볼 수 있다.[2]
기둥 상부의 포작은 일출목한 주심포계열로 조선 초기 모습을 하고 있으며, 우주 상부의 귀포는 귀한대를 구성하여 추녀를 받도록 하였다. 포간에는 깊게 초각한 화반을 놓아 처마 밑을 짜임새 있게 장식했다. 3포 초익공의 공포는 주심포 형식과도 유사하며 익공의 형식이 조선 전기의 짧고 강직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출목을 보통 건물보다 많이 낸 것도 조선 전기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출목 첨차를 장혀와 한 몸으로 만든 것은 고식이면서도 다른 건물에서 볼 수 없는 야옹정의 특징 중 하나이다.[2]
평고대와 착고막이를 하나의 부재로 만든 구로대의 사용은 봉정사 극락전 등에서 볼 수 있는 고식기법으로 야옹정의 가치를 더해준다. 부연의 배걷이가 현격하고 말구 치의 경사가 센 것도 시대와 지역적 특색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야옹정에는 단청의 흔적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데, 누정건축에서 단청을 한 것은 보기 드문 예이다.[2]
대청 배면과 좌우측, 우측칸 전면의 창호는 가운데 설주가 세워진 고식의 영쌍창으로, 정자의 건립 연대를 짐작하게 해준다.[2]
야옹정은 몇 안 되는 임진왜란 이전 건물이라는 희소성과 더불어,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건축 양식과 기법, 막새, 단청 등이 잘 남아 있어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해도 충분하다고 판단된다.[2]
3. 건축 양식 및 특징
야옹정은 임진왜란 이전인 1566년(명종 21)에 건립되어 초창기 모습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었다. 특히 초창기 막새기와와 단청이 남아 있어, 임진왜란 이전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2] 우주 상부 귀포는 귀한대를 구성하여 추녀를 받치고, 포간에는 깊게 초각한 화반을 놓아 처마 밑을 짜임새 있게 장식했다.[2]
3. 1. 평면 구조 및 배치
야옹정은 정면 4칸, 측면 4칸 규모의 丁자형(정자형) 평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좌측 3칸은 대청으로, 우측에는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우측 칸의 전면에는 누마루 1칸, 배면에는 온돌방 1칸을 각각 돌출시켰다. 주위에는 방형의 토석 담장을 둘렀으며, 전면 담장 좌측에는 사주문을 세워 정자로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자 전면과 배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는데, 전면 퇴칸 하부에는 누하주 6본을 세워 누마루를 구성하였다. 배면 퇴칸은 숭정 년간(崇禎年間)에 설치되었으나, 기존 건물과 잘 어울려 이 건물의 특징 중 하나로 꼽힌다.[2] 대청 배면과 좌우측, 우측칸 전면의 창호는 가운데 설주가 세워진 고식 영쌍창으로, 정자 건립 연대를 추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2]
3. 2. 지붕 및 공포 양식
건물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기둥 상부의 포작은 일출목한 주심포계열로 조선 초기 모습을 하고 있다. 포 사이에는 깊게 초각한 화반을 놓아 처마 밑을 짜임새 있게 장식했다.[2] 3포 초익공의 공포는 주심포 형식과도 유사하며 익공의 형식이 조선 전기의 짧고 강직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2] 출목을 보통 건물보다 많이 낸 것도 조선 전기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출목 첨차를 장혀와 한 몸으로 만든 것은 고식이면서도 다른 건물에서 볼 수 없는 야옹정의 특징 중 하나이다.[2]
3. 3. 세부 건축 기법
야옹정은 봉정사 극락전 등에서 볼 수 있는 고식 기법을 사용했는데, 평고대와 착고막이를 하나의 부재로 만든 구로대 사용이 그것이다. 이는 야옹정의 가치를 더해주는 요소이다.[2] 부연의 배걷이가 현격하고 말구 치의 경사가 센 것 또한 시대 및 지역적 특색을 반영한 것이다.[2] 누정 건축에서는 드물게 단청의 흔적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2]
3. 4. 단청 및 창호
예천 야옹정은 누정 건축에서는 드물게 단청의 흔적이 부분적으로 남아있다.[2] 대청 배면과 좌우측, 우측칸 전면의 창호는 가운데 설주가 세워진 고식 영쌍창으로, 정자 건립 연대를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2]
4. 문화재적 가치 및 의의
예천 야옹정은 임진왜란 이전 건물로서 희소성이 있으며, 건축 양식, 기법, 막새, 단청 등이 잘 보존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2]
4. 1. 임진왜란 이전 건축 양식 연구 자료
야옹정은 임진왜란 이전인 1566년(명종 21)에 건립되었으며, 초창기의 모습, 막새기와 및 단청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따라서 임진왜란 이전 건축 양식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2]기둥 상부의 포작은 일출목한 주심포계열로 조선 초기 모습을 하고 있으며, 3포 초익공의 공포는 주심포 형식과도 유사하고 익공의 형식이 조선 전기의 짧고 강직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출목을 보통 건물보다 많이 낸 것도 조선 전기의 모습이다. 출목 첨차를 장혀와 한 몸으로 만든 것은 고식이면서도 다른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야옹정의 특징이다.[2]
평고대와 착고막이를 하나의 부재로 만든 구로대의 사용은 봉정사 극락전 등에서 볼 수 있는 고식기법으로 야옹정의 가치를 더해준다. 부연의 배걷이가 현격하고 말구 치의 경사가 센 것도 시대와 지역적 특색을 반영한 것이다. 야옹정에는 단청의 흔적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데, 누정건축에서 단청을 한 것은 보기 드문 예이다.[2]
대청 배면과 좌우측, 우측칸 전면의 창호는 가운데 설주가 세워진 고식의 영쌍창으로, 정자의 건립 연대를 가늠케 한다.[2]
4. 2. 막새기와 및 단청 연구 자료
야옹정에는 초창기의 막새기와 및 단청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임진왜란 이전 건축 양식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2] 누정 건축물에 단청을 한 것은 보기 드문 예이며, 평고대와 착고막이를 하나로 만든 구로대 사용은 봉정사 극락전 등에서 볼 수 있는 고식 기법으로 야옹정의 가치를 더해준다.[2] 부연의 배걷이가 현격하고 말구 치의 경사가 센 것도 시대와 지역적 특색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2]참조
[1]
간행물
도지정문화재 지정해제 고시
http://www.gb.go.kr/[...]
경상북도지사
2016-09-12
[2]
간행물
예천 야옹정 보물 지정
문화재청장
201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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